“있는 일자리라도 지키는 방안 논의하는 게 최선”

[매일노동뉴스 인터뷰] 정용건 사무금융연맹위원장 당선자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에 비견되고 있다. 경기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국노총 금융노조와 함께 금융노동자 구조조정 대응에 중심 축 역할을 하는 사무금융연맹의 역할이 여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3일 정용건(46) 사무금융연맹 위원장 당선자를 만났다. 정 위원장은 21일 연맹 확대대의원대회에서 재선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바꾸는 투쟁을 위해 단위사업장에서부터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며 “민주노총도 일방적으로 ‘심판한다, 타도한다’는 선언 수준의 운동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재선했다. 선거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코스콤 노사합의서를 쓴 날이 입후보 등록마감 일이었다. 출마의 변도 서울지방노동청 남부지청에서 썼다. 선거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아쉬웠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현장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꼈다. 연맹 일반사무분과에는 제조업체의 사무직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다. 한국후지쯔는 전체 인원의 30% 감축을 추진 중이고, 한국바스프 화성공장은 폐쇄한다고 한다. 실물부문의 위기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 당선자가 내건 첫 번째 공약은 구조조정 대응전략 태스크포스팀(TFT)구성이다.

 “올 하반기에 실물경제 위기가 다시 금융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닥칠 것이다. 실물위기가 다시 금융을 덮치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4%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올 하반기에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한다. 미국, 중국 등의 대외여건이 좋아야 그나마 가능할 것 같다. 당장 올해부터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부문은 전반적으로 리스크 관리가 돼 있어, 지급여력비율을 못 맞출 사업장은 별로 없다. 반면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조운동 차원에서 보면 인수합병에 따른 구조조정에 대응해야 하는데 TFT팀은 그러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 실물부문 위기가 심각한 수준이다. 연맹이 현 위기와 관련한 정책대안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작업장 안에서 노조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핵심 키워드다. 소속 사업장의 현 상황과 리스크가 어느 정도인지, 이후 인력수급은 적절한지 파악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금융기관의 노동자수를 줄이기 시작하면 위기극복의 전망은 없다. 위기극복이라고 해 봐야 많은 사람 죽이고 살아남은 자들만의 잔치가 될 게 뻔하다. 이래선 안 된다. 노동자를 줄이는 구조조정 방식, 10년 전 외환위기 때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외환위기 때는 한계기업이 많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가처분소득을 늘리고 일자리에 안정감을 줘야 한다.”

 - 강만수 경제팀이 물러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는 어떻게 보나.

 “금감위 위원장 시절부터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외환위기 당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다. 윤증현 내정자가 왔다고 경제 살리기가 가능하겠는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수행하는 한 사람의 관료일 뿐이다. 현재 정부의 정책이 바뀌지 않는 이상 어떤 관료가 와도 변할 게 별로 없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국민에 신뢰를 줘야 하는데, 국민을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 여전히 가진 자를 중심에 두고 있는 정책을 펴고 있고 대화나 소통 구조가 일체 없다. 겨우 재정정책과 금리인하 정도인데 이미 쓸모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두 가지 정책으로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 않나. 산업현장에서 일자리를 어떻게 지키고 생산적으로 갈 것이냐가 중요하다. 경직적이고 억압적인 노사관계 인식을 가진 현 정부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이상 위기는 극복되지 않는다.”

 - 정부의 일자리 창출방안에 대해 논란이 많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있는 일자리부터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있는 일자리가 없어지는 판국에 새 일자리를 누가 만들겠나.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설비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냐는 것이다. 정부의 역할이 요구되는 공공부문의 경우 새 일자리가 생길 여지가 있겠지만 인센티브를 준다한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겠는가.”

 - 한국노총과 경총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 구성을 제안했다. 경제위기 극복과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상층부의 정치적인 선언 수준이라고 본다.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 만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일부 노동계가 제안한 방안이 실효성을 가질지 모르겠다. 작업장 내에서는 자구책 차원에서 일자리 나누기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중앙이나 국가단위에서는 노동계의 제안이 먹혀들지 않는다. 외환위기 때 경험하지 않았나. 노동계는 노사정위에 참여했지만 결국 들러리 역할만 했다. 만약 대타협이 필요하다면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진정성을 갖고 접근해야 노동계도 함께 움직일 수 있다. 한국노총과 한국경총이 제안한다고 해서, 국민이 바뀌고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노동계를 파트너로 여기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느냐인데, 이것이 확인되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다.”

  - 지난해 연맹 소속 생보노조 알리안츠생명지부와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지부가 장기파업을 마무리했다. 당선자는 코스콤대책위 위원장을 맡았는데.

 “알리안츠나 코스콤 노동자들은 치열한 투쟁을 통해 일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알리안츠 사태는 노사 간 소통구조가 미비해 발생한 문제다. 회사측도 노조와 대화하지 않으면 엄청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은 사건이다. 코스콤 비정규직 문제도 노사가 자율적으로 풀려고 노력했지만 정부조차 책임지거나 지원하지 않아 475일 동안의 장기파업이 됐다. 책임 있는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 두 파업 모두 본질적으로 노사관계 소통구조가 막혀 있고, 책임지는 경영인이 없었기 때문에 장기화됐다."

 - 최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진보정당 통합건이 안건으로 제안됐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입장은.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요구해 노동자 정치세력을 통합하라고 하는데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통합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세력이 통합되는 게 아니라 갈등과 분열만 불러올 수 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분당사태 과정에서도 비대위를 압박하기만 했고 합의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념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분열된 것을 힘으로 통합시킬 수는 없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노준, 노건추를 모두 인정하면서 토론하고 열린 자세로 가야 가능하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됐는데도 제대로 된 집회 한 번 열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온몸으로 항의하지도 않고 있다. 이랜드-뉴코아투쟁 이후에 과연 민주노총이 주도한 싸움이 있었나. 비정규직법 개악투쟁 이후 민주노총이 주도한 투쟁이 있었는지 곱씹어봐야 한다.”

 - 연맹 선거에 출마한 세 후보조 모두 대통합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조수 수석부위원장 동지와 손을 잡은 것은 대통합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대의원 동지들로부터 평가를 받았다. 모든 후보들은 선거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겠다고 약속했다. 각자 맡은 부분에서 노력하고, 연맹 사업 속에서 참여한다면 통합도 가능하다. 선거유세 때 다른 후보들이 내건 공약은 연맹 사업에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