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흥국 정리해고를 법률 아닌 경제논리로 판단”

연맹, 홍희덕 의원실 등 7일 정리해고 입법 10년-법 쟁점 토론회 개최

법학자, 변호사들 한목소리로 흥국생명 정리해고 대법원 판결 비판

 “대법원이 흥국생명 정리해고를 법률이 아닌 경제논리에 따라 판단했다.”

연맹이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실 등과 함께 8일 국회의원회관 1층 소회의실에서 개최한 ‘정리해고 입법 10년-법 쟁점 토론회’에서 주발제를 맡은 도재형 이화여대 법대 교수는 ‘정리해고 법제화 이후 판례 법리의 변화 추세’를 주제로 대법원 판례를 분석하며 이같이 말했다.

도재형 교수는 “97년 외환위기는 노사관계뿐만 아니라 노동판례에도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는데, 법원은 기업 내외의 상황이나 경제 논리에 입각해 개별 법률 분쟁에 관한 판단을 내리곤 했다”면서 “법원은 자신의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동법, 특히 그중에서도 해고 제한 법제의 적용 범위를 축소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도 교수는 특히 “대법원이 정리해고의 절차적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함에도 정리해고 정당화 요건을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고 비판한 뒤 “대법원이 엄격한 자세를 견지해야만 사용자가 정리해고 전에 근로자대표와 사전협의를 진행하는 등 해고에 신중을 기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조발제를 맡은 흥국생명 해고자 김득의 조합원은 “흥국생명은 정리해고에 대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근거가 없거나 과장되고, 노조와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으며, 해고 대상자 선정에서도 공정성과 객관성을 결여하고 있다”면서 “실체적으로나 절차적으로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는 정리해고 요건을 충족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득의 조합원은 아울러 “흥국생명 사용자는 정리해고를 사실상 노조 파괴를 위해 사용했고, 남아있는 직원들은 연봉제를 실시해 통제하고 지점 총무 인력은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면서 “신자유주의 기업 형태의 완결판을 보여주었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온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대법원은 노조가 정리해고 실시 자체를 반대하는 것 ‘경영권의 본질적 내용’에 관한 침해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노조가 정리해고 반대를 위한 쟁의행위를 한다고 하여 과연 경영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되는 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권 변호사는 “쟁의행위는 노조의 목적 달성을 위한 핵심 권리여서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면 경영권, 인사권에 관한 사항도 근로조건과 관계있는 것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된다는 다수설, 판례에 반한다”고 강조했다.

 김선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법원이 법문에 충실하게 절차적 요건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다”면서 “경쟁과 노동유연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간과되기 쉬운 사회적 분위기에서 법원만이라도 정의의 관점을 견지하며 사회의 균형추를 유지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대 교수도 “경제적 관점에서 고용유연화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하더라도 법원은 법률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면서 “대법원은 마치 헌법재판소처럼 법률을 사실상 무시하고 정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닌지 면밀히 재검토하고, 특히 경영상 해고 요건에 대한 ‘규범적 해석론’을 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97년 한국노동시장은 정리해고 등 대량실업과 비정규직 급증이라는 양적, 질적 문제에 직면했으며 경제 위기 회복 이후에는 소득 분배 불평등이 삼화되고 절대적 빈곤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인력 축소, 비정규직 확대, 노동조건 악화를 동반하는 노동 유연화 정책은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토론회 시작에 앞서 주최 단체 대표가 인사말을 했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97년 IMF 이후 정리해고는 사회양극화의 시발점이었으며 노동자들을 복종시리켜는 위협도구로 사용됐다”면서 “최근 세계 경제 위기에 정부와 자본은 또다시 노동자 서민의 희생을 강요할 텐데 이제는 10년 전처럼 당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용건 연맹 위원장은 “금융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인수 합병이 상시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면서 “오늘 토론회를 기점으로 흥국생명해복투 투쟁이 강화되고 앞으로 다가올 금융대란에서 정리해고 당하지 않도록 투쟁하자”고 강조했다.

 김형탁 흥국해복투 의장은 “정리해고 때문에 고용 유연화와 비정규직이 확대됐다”고 설명한 뒤 “사측이 재입사를 권고하기도 했지만 재입사를 받아들이면 정리해고를 인정하는 것이어서 잘못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거부했다”며 “원직복직을 위해 계속 싸워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