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한국 금융산업을 파국으로 몰고가는 금산분리 완화 철회하라!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영국에서는 122조원을 투입해 8개 은행을 국유화하기로 했고,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400억 달러 규모의 펀드와 구제금융을 조성키로 했다. 아이슬란드는 국가부도 위기에 처했고, 프랑스는 은행파산을 방지하기 위한 구제기구를 창설할 예정이다. G7도 모자라 G20 재무장관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는가 하면 중동 국가들마저 예금지급 보장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작금의 세계는 그 어느 때 보다도 ‘금융시스템 안정’과 ‘금융규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IMF마저도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라 진단하고 있는 마당에 유독 이명박 정부만 “시장의 불안정성은 인내하고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규제’보다는 ‘완화’에 열을 올리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과 분노를 키우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출범한지 8개월 밖에 되지 않은 이명박 정부의 여러 헛발질 정책은 747, 경부운하, 환율개입, 종부세 완화에 이어 급기야 금산분리 완화로 이어졌다.

어제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산분리 완화 방안은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의 의결권 행사 가능지분 한도를 기존 4%에서 10%로 확대하고 산업자본의 출자지분이 30% 미만인 PEF와 연기금은 산업자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3월 31일 금융위원회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밝힌 1단계(PEF, 연기금의 은행지분 보유규제 완화)와 2단계(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규제 완화)를 한꺼번에 실시하고 3단계(금산분리 폐지)만 남겨둔 것이다. 이는 이번 금산분리 완화 방안이 종국에는 금산분리 폐지로 이어질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지배가 가져올 폐해에 대해 수없이 강조해 왔다. MB정부의 관료들은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불과 10여년전 IMF외환위기 당시 문어발식 황제경영을 일삼던 일부 재벌들이 금융자회사를 동원해 모기업의 부실을 만회하려다 국민경제를 파탄 낸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 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금산분리 완화로 인해 산업자본인 모기업의 이해에 따라 금융기관의 자금이 기업의 무리한 확장이나 위험한 투자에 과도하게 동원된다면 해당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는 물론이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하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부실회사를 인수해서 경영권을 확보하고 단기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주업무로 하는 사모펀드마저 은행을 소유하게 된다면 장기적, 안정적 금융산업 발전은 더욱 어려워지고 금융 불안정성은 더욱 배가될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금산분리 완화 추진배경 중 하나로 ‘정부소유 은행의 원활한 민영화’를 들고 있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을 민영화하면서 대기업과 재벌들에게 매수자로 나설 것을 종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서민과 중소기업, 그리고 국가경제를 위한 국책은행의 역할과 책임은 방기한 채 ‘글로벌 플레이어’에 눈이 멀어 재벌들에게 금융기관을 내주기 위해 금산분리를 완화한다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조만간 법인세도 인하하고 연결납세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하니 모양새가 꼭 대기업과 재벌들에게 판돈 대주고 금융기관 인수하는 노름판에 뛰어들라고 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번 발표에는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해 비은행금융지주회사가 비금융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금융자회사와 비금융자회사를 모두 지배하고 있는 현 재벌체제를 그대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금산분리 완화에 이어 이명박 정부가 재벌을 위한 정부임을 만천하에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미국발 금융위기 등 최근 상황은 과도하고 경직적인 현행 규제의 합리적 개선을 필요로 한다”며 금산분리 완화 추진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글로벌 신용위기 속에서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가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전규제를 풀어 놓고 사후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시장의 규제 비용을 더 높인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산업자본이나 재벌이 은행을 사금고화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사후적으로 규제하는 것보다 사전에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지 않는 것이 감시의 효율성을 더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오기만 가지고 국가를 운영해서는 안된다. ‘계획대로 추진해 성과를 내는 것’이 국정운영 능력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MB 경제관료들은 ‘위기 상황에 맞게 계획을 올바로 수정하는 것’도 국정운영 능력 중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합법적으로 은행을 재벌의 사금고화 시키는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이번 금융위기를 헤쳐 나가려면 경제에 충격을 주고 시장의 신뢰를 상실한 강만수 경제팀이 퇴진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우리 사무금융연맹은 한국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철회시키기 위해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고 일인시위, 금융기관 종사자 서명운동을 포함하는 총력 투쟁을 전개할 것임을 밝힌다. 

2008. 10. 14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